구직 조언자나 헤드헌터는 효과적인 이력서 작성은 멋진 동사와 형용사를 잘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IT 채용담당 관리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사실 요란한 단어들을 사용한다면 이력서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역효과만 난다. 여기에 채용담당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력서 어휘를 소개한다.

아래 기사는 몰리 조스의 기사 '이력서 작성시 어휘 선택에 신중을 기하라'에 기반한다.

어휘 몇 가지를 잘못 선택해 담당자가 이력서 읽는 것을 중단한다고 믿기는 어렵지만 이는 사실이다. 일부 채용담당직원과 리크루터는 싫어하는 어휘 목록이 머리 속에 있다고 시인한다.

이력서 쓰는 법에 관한 책들은 가능한 많은 동사, 형용사, 부사로 이력서를 채울 것을 권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의하지 않는다면 이력서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보다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채용 담당자 들이 이력서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한 단어들을 소개한다.

돕다, 도왔다
․ 피해야 하는 이유: 채용관리자들은 지원자가 도운 것이 아니라 직접 한 일을 알고 싶어한다. 이력서에 적을 만한 일이라면 '돕다'보다는 나은 어휘를 골라야 한다.
․ 예) PDA 연구를 통해 마케팅 디렉터를 도왔다.
․ 가능한 다른 표현: 마케팅 부서를 위해 PDA 를 연구했다.

실험
․ 피해야 하는 이유: 지원자가 시도한 일에 관심이 없다, 성취한 일에만 관심이 있다.
․ 예) 새로운 LAN 관리 소프트웨어를 시도했다.
․ 가능한 다른 표현: 새로운 LAN 관리 소프트웨어를 시험하고 평가했다.

능숙하게, 효과적으로, 유희하여, 신속하게, 전문가, 마스터했다
․ 피해야 할 이유: 채용 관리자들은 특정 직무를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 설명하는 단어들을 싫어한다. 많은 경우 자랑처럼 들리며 이는 불필요하다. 한 리크루터는 "그 일을 잘하지 못한다면 이력서에 쓸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 예: 윈도우 NT 에서 윈도우 서버 2003으로의 전환을 능숙하게 관리했다.
․ 가능한 다른 표현: 근무시간에 동작중단 없이 윈도우 NT 에서 윈도우 서버 2003으로의 전환을 관리했다.

첨단, 디테일 지향, 조율하다, 촉진하다, 변환하다, 증명된 능력, 시너지, 연락
․ 피해야 할 이유: 채용 관리자들은 이런 어휘가 실제 전달하는 내용 없이 공간만 낭비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어휘가 너무 많이 적혀있기에 원래의 에너지를 잃어버렸다.
․ 예: 일상적인 네트워크 운영을 감독하고 주요 기술 이니셔티브를 구축하는데 증명된 능력을 지닌 디테일 지향 관리자
․ 가능한 다른 표현: 8명 IS 직원을 감독했다. 두 개의 완전한 플랫폼 이전을 완료했다. 사무실 이전에 이은 장비와 자원 통합화를 수행했다.

…에 책임을 지다
․ 피해야 할 이유: 관리자라면 당연히 책임질 일이 있다. 책임질 일이 무엇인지 몇 가지 숫자를 동원해 설명하여 일의 범위를 알리는 것이 좋다.
․ 예: 재고관리, 네트워크 운영 감독, 새 장비 구매, 워크스테이션 문제 해결에 책임을 짐.
․ 가능한 다른 표현: 윈도우 XP를 수행하는 70명의 사용자와 윈도우 서버 2003을 운영하는 두 대의 서버를 감독했다. 재고관리 장비를 위한 자산관리계획을 구축했다. 내부 인프라를 위한 네트워크 운영 팀을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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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게이츠는 2008년 7월부터 MS의 경영을 풀타임으로 하지 않고 파트타임으로 근무한다고 밝히면서 자선재단에 집중할 것임을 밝혔다. 2년 후 은퇴를 공식 발표한 것이다. 시애틀의 명문 집안 외아들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이 없는 빌 게이츠는 12살 때에 처음 컴퓨터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세계를 호령하는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의 꿈을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 이때 사업의 동반자인 폴 앨런도 만나 함께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가며 쏠쏠히 용돈까지 벌곤 했다. 이후 하버드 대학에서 지금의 MS CEO인 스티브 발머를 만나게 되었다. 1975년 설립된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공시켰던 배경에는 빌게이츠의 오른팔, 왼팔이었던 폴 앨런과 스티브 발머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초기 빌게이츠는 불법복제와 MITS에 판매한 베이직 소프트웨어에 대한 소유권 소송으로 인해 고비를 겪으며 고생했다. 이후 그에게 찾아본 첫 번째 기회가 바로 IBM에서 준비하는 개인용 컴퓨터에 탑재할 운영체제 개발이었다. IBM이 1980년에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뛰어들게 된 것은 1977년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애플컴퓨터가 애플II를 출시하면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집적회로와 트랜지스터를 활용한 중형 컴퓨터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IBM은 애플컴퓨터에 빼앗긴 초기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면서 애플과는 달리 주요 핵심 부품과 운영체제 등을 직접 개발하지 않고 하청을 주었다. 이 당시 운영체제는 게리 킬달이 1975년부터 판매했던 CP/M이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매년 2배 이상 매출이 성장하며 운영체제 시장을 독점했던 CP/M은 PC 시장에 진출하려는 IBM에게 더할 나위없는 소프트웨어였다. 하지만, IBM은 사업 수완이 좋은 빌게이츠를 선택하게 되었고, 이 선택은 MS와 디지털리서치(게리 킬달)의 향후 운명을 뒤바꾸게 한다.
 
그런데, 빌게이츠에겐 이 당시 운영체제가 없었다. 부랴부랴 CP/M을 모방한 Q-DOS를 인수한 빌게이츠는 MS-DOS라는 이름의 운영체제를 개발해 IBM에 공급하게 된다. 그리고, 이 운영체제는 한 마디로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IBM PC는 불티나게 팔렸고, IBM은 PC의 아키텍터를 오픈하면서 다른 IBM 호환 PC도 판매량이 함께 팔리면서 애플보다 더 큰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 백개의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MS-DOS를 PC에 탑재하면서 PC 시장의 대표 운영체제로 MS-DOS는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빌게이츠의 성공 신화에 단초를 제공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후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IBM은 OS/2라는 GUI 기반의 운영체제를 통해 MS를 견제하려 했지만 빌게이츠는 윈도우를 들고 나오면서 MS-DOS 이후를 준비하게 되었다. 빌게이츠에게 제2의 기회를 제공한 윈도우는 1981년 애플의 매킨토시에서 영감을 얻었다. MS는 2년 후인 1983년 11월 윈도우 발표회를 가지고 1985년 11월 윈도우 1.03 버전이 출시되었다. 사실 1984년 출시된 애플의 매킨토시는 스티브 잡스의 요청으로 빌 게이츠가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1986년 소개된 윈도우 2.0은 매킨토시의 운영체제를 너무 닮은 탓에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를 비난하며 둘의 사이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어쨌든, 빌 게이츠는 1990년 윈도우 3.0을 발표하고, 1995년 윈도우 95가 출시되면서 운영체제 시장을 평정하게 되었다.
 
빌게이츠의 3번째 기회는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다. 1980년대에 WWW을 만든 팀 버너스리와 WWW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웹브라우저인 모자이크를 만든 마크 앤드리슨은 인터넷 대중화의 공헌자라 할 수 있다. 1990년대초 PC 시장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인텔, IBM, MS, 애플 등은 최고의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다른 한 켠에서는 조용히 인터넷 혁명이 시작되고 있었고 그것은 모자이크를 만든 마크 앤드리슨이 넷스케이프사에 부사장이 되면서 본격화되었다. 1994년 소개된 넷스케이프 네비게이션 1.0은 폭발적 인기를 얻었고 승부사인 빌게이츠는 이것을 주목했다. 그래서,1995년 웹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 1.0을 출시하였다. 하지만, 넷스케이프에 비해 성능과 기능이 한참 떨어지는 이 소프트웨어는 빌게이츠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빌게이츠는 끈질기게 익스플로러를 업그레이드하고 또 윈도우 95 OSR2부터는 IE를 끼워 넣으며 윈도우를 납품하는 컴퓨터 제조사들에게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의 사용 중단을 강요, 협박했다. 이러한 MS의 공격에 넷스케이프의 시장 점유율을 97년부터 하락하기 시작했고, 1998년에 넷스케이프사는 AOL에 인수되면서 웹브라우저 시장은 운영체제 시장과 마찬가지로 MS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PC 시장과 인터넷 시장을 장악한 빌 게이츠는 홈 네트워크와 포스트 PC 시장의 장악을 위해 X-박스(가정용 게임기 시장), 닷넷(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의 결합), 임베디드 운영체제(PDA, 휴대폰 등에 탑재) 등으로 확장하면서 다양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윈도우 라이브 등의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구글과 야후 등의 인터넷 기업에 정면 도전하며 인터넷 기업으로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빌게이츠가 베이직을 시작으로 컴퓨터 소프트웨어 시장에 뛰어든 이유도,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 시장에 뛰어든 이유도 1975년 소개된 MITS의 개인용 컴퓨터 알테어 8800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용 컴퓨터에 대한 비전과 가능성을 예견한 것은 앨런 케이이다. 앨런 케이는 전문가가 아닌 개인이 연필과 종이를 사용하는 것처럼 쉽게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 확신하고 다이나북(Dynabook)이라는 컴퓨터를 구성했다.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화면과 스타일러스 펜, 무선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는 다이나북은 1972년 그 개념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1973년 알토라는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한 것이 앨런 케이이다. 또한, 이 시기의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1963년에 이미 최초의 마우스를 소개했다. 그리고, 게리 킬달의 PC용 운영체제인 CP/M을 모방한 MS-DOS는 빌게이츠 성공의 발판이 되었다. 이후, 윈도우는 제록스알토스연구소에서 앨런 케이가 만든 다이나북과 스티즈 잡스의 매킨토시에서 착안해 탄생하였다. 또한, 인터넷 익스플로러 역시 넷스케이프 네비게이션의 뒤를 이어 형편없는 성능과 기능에서 시작한 웹브라우저이다. 즉, 빌게이츠는 ‘기술이 너무 뛰어난 제품은 시장을 너무 앞서가 시장을 지배하지 못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현 시장에서 꼭 필요한 기능을 최적으로 구성해 시장에 내놓는 사업가였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그는 제품의 대중화와 보급, 마케팅에는 귀재였지만 항상 타인의 영감과 아이디어를 모방하는 복제의 귀신이라는 오명을 받기도 한다.
 
어쨌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애플 컴퓨터나 IBM 호환 PC 등의 개인용 컴퓨터는 이같이 1970년대의 과학자들과 연구원들이 개념을 잡았고, 이후 1980년대 빌게이츠, 스티브 잡스 등이 사업적으로 성공시켰던 것이다. 주목받지 못한 수 많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빌게이츠와 MS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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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SW 개발자가 성공하지 못하는 세가지 이유

류한석(IT 컬럼니스트)   2007/06/27
소프트웨어 개발자 직종에 대한 회의론적인 얘기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한때 IT 붐이 일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개발자를 지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을 보면, 신규 유입되는 인력이 아주 적은 편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영악해서 이 직종에 비전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신참 인력뿐만 아니라 고급 인력도 많이 부족하다. 현재의 사회 풍토에서 고급 인력으로 성장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사회가 제시하는 길을 따라가다가는 고급 인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퇴출된다.

필자의 경우를 보면, 필자는 정말 프로그래밍이 좋아서 시작한 8비트 키드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컴퓨터를 알게 된 이후로 한시도 컴퓨터와 떨어진 적이 없는 소위 컴퓨터광(geek)이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사회에 나와 첫 직장인 SI 업체에서 일하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이후 프리랜서, 개인회사 창업, 벤처기업, 중소기업, 대기업, 외국계 기업을 두루 걸치면서 현재까지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만일 그런 인생의 순간순간에서 이를 악물고 분발하지 못한 채 끈을 놓아버렸다면 어땠을까? 정말 아찔한 생각이 든다. 특유의 헝그리 정신으로 인해 겨우 버텼으며 성격도 많이 변했다. 그간 필자 자신 그리고 선배, 동료, 후배들을 보면서 느꼈던 생각을 정리해서 개발자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 세 가지를 꼽아 보았다.

SI 중심의 왜곡된 업계 구조
첫 째, 업계 구조가 SI 중심으로 왜곡되어 있다. 국내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패키지나 솔루션 비즈니스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태에서, 대기업 중심의 SI 업체들이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산업의 혈액 순환이 잘 되지 않아, 대기업만 돈을 벌뿐 중소기업들은 협력 업체라는 미명 하에 근근이 먹고 살고 있는 형편이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그리고 영업 이익의 90% 이상을 대기업 계열 SI 업체 상위 3개사가 가져가고 있다.

SI는 소프트웨어 산업을 구성하는 한 가지 요소일 뿐이지만 국내에서는 거의 SI 밖에 없는 수준이다. 그런 상태에서 빅3업체가 모든 것을 가져가고 있으며, 산업 전반에 하청 및 재하청에 따른 죽음의 순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 생태 구조에서 개발자는 단지 머리 수에 불과할 따름이다. 또한 전문적인 지식에 대한 가치 판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아키텍처까지도 비전문가에게 맡겨지는 경우가 많다.

SI 중심의 산업 구조, 그리고 전문가에 대한 평가 체계가 없고 단지 머리 수에 의해 개발자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개발자의 성공 사례는 나올 수 없다. 대기업의 협력 업체에서 일하는 많은 개발자들이 과중한 업무로 인해 참다못해 전업을 하거나 건강이 나빠져서 자의반 타의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곤 한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개발자들이 스스로를 막장 인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엉성한 개발자 관리
둘째,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개발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멘탈(mental) 작업이다. 인간의 정신에 의해 결과물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 하지만 국내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그러한 멘탈 작업에 적합한 업무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커리어 관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실적에 대한 보상도 미비하다.

개발자들에 대해 출퇴근 시간을 정확하게 체크하고(아니, 출근시간을 지키는지 체크하고 퇴근시간은 얼마나 늦는지 체크한다), 집중할 수 없는 시끄러운 환경을 제공하고, 업무 실적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도 못한다. 심지어 복장 점검을 하기도 한다. 또한 요즘 개발자들은 전문적인 교육은 고사하고 일일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도 어려운 형편이다. 많은 기업들이 최소한의 투자조차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소위 초일류 기업을 지향한다는 대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열악한 업무 환경을 제공하면서 성과에 있어서는 최고의 아웃풋을 강요한다. 개발 환경만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도 제대로 안되고 있다. 부적절한 관리자들이 개발자를 정신적으로 학대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조적 환경, 그리고 기업문화와 싸워야 한다. 많은 선배 개발자들이 그런 생존을 위한 싸움에서 졌고 결국 사라져 갔다.

개발자들의 스킬 부족과 닫혀진 태도
셋째, 끝으로 개발자들의 커뮤니케이션 스킬 부족과 태도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는 한국적 기업문화(상명하복)와 결합하여 더욱 복잡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개발자들은 특히 다른 직종에 비해 성격이 까칠한 경우가 많다. 자신만의 지식과 세계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전부라고 우쭐한 채로, 다른 개발자나 다른 직종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하지만 “타인이 원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그런 태도는 타인과의 협업을 어렵게 하고 결국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도 얻지 못하게 한다. 젊은 시절에는 그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큰 문제가 없을 수 있겠지만, 30대 중반이 넘을 때까지도 태도를 변화시키지 못할 경우 이후에 많은 고난을 겪게 된다. 그것은 이미 인간의 역사에서 증명된 삶의 법칙이다.

똑똑하고 샤프한 개발자들은 종종 있다. 하지만 타인의 관심사에 진정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타인에게 친절한 마음을 가진 개발자를 만나기란 참으로 힘들다. 이것은 다른 직종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개발자 출신인 필자가 볼 때에는) 개발자들의 세계에 유독 이런 까칠함과 폐쇄성이 심하다.

물론 그런 독불장군적 태도가 단지 개발자들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많은 개발자들이 피해 의식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타인에 대한 공격적 태도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회적 환경의 미비,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부족한 개발자들. 이 조합이 더욱 안타까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추가적으로 언급할 점은, 혁신해야 할 여러 가지 네가티브한 요인에도 불구하고 개발자들끼리 잘 뭉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외국과 달리 개발자 커뮤니티의 활동이 많지 않다. 물론 JCO(자바 개발자 커뮤니티), SCA(소프트웨어 커뮤니티 연합) 등 개발자들의 모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오프라인 모임이나 컨퍼런스를 개최할 뿐, 별다른 ‘사회 변혁적 활동’을 구현하지는 못하고 있다. 개발자들의 실상을 알리고 대안을 마련하고 정부나 기업들과 접촉을 하고 해외에 진출하고 창업을 하는 등의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마도 필자의 이런 글에 대해 그저 현실에 대한 비판에 불과하다고 얘기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먼저 냉정하게 현실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다.

요약해보자. 대기업 계열사들이 장악한 SI 위주의 산업 구조에서 개발자들은 성장하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한다. 이런 사회 풍토에서 과연 존경 받거나 성공한 개발자들이 얼마나 되는가? 또한 많은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기업 문화가 후진적이다. 제대로 된 업무 환경을 제공하지도 못하면서 프로젝트 관리도 안 된다. 그러면서 성과에 대해서는 초일류를 원한다. 이율배반적이다.

개발자들의 태도 문제도 있다. 환경을 바꾸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개발자 스스로 그런 인식을 가져야 한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만으로는 삶이 억울하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향상시키고 타인에 대해 친절한 태도를 갖추는 인간 수양이 필요하다. 그리고 동료 개발자들과 함께 변혁을 위해 협업하고 개척해나갈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행동해야 한다.

왜곡된 업계 구조 속에서 가만히 있으면 퇴출될 뿐이다. 우리에게는 행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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